F-14B VF-103 제작기 04

3일 연휴인데다, 집사람과 아기가 처가에 간 틈을 타 목요일 밤을 하얗게 불태워봤다. 지난 주말부터 시작한 별매 콕피트 색칠이 끝나고 마침내 기수 조립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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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es 별매 콕피트를 완성한 모습. GSI크레오스 라카 H317번을 에어브러싱하고 에나멜 물감으로 워싱(검은색)과 하이라이팅(여러가지 색)을 해주었다.

계기판과 콘솔은 하세가와 키트에 든 데칼을 그대로 붙여주었다. 1/72 스케일의 별매 콕피트는 디테일이 너무 작아서 붓놀리기가 쉽지 않은데, 키트 데칼을 그대로 붙여주는 편이 나은 것 같다. 키트의 계기판/콘솔 데칼이 별매품에 새겨진 몰드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몰드 위에 데칼을 덮는 순간 요철 때문에 그 덮는 면적이 더 작아지기는 하지만, 실제로 붓질을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시각’이라는 것이 그다지 정확한 게 아닌지라 이렇게 ‘대충’만 붙여놔도 ‘정밀하게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나는 F-14B형 키트를 썼음에도, 계기판/콘솔 데칼은 F-14A형의 것이 들어있어 조금 실망스러웠다. 대개의 경우 나는 하세가와의 고증을 믿고 쓰는 편이고, 1/72로 전향한 이후 고증에 너무 얽매이지 않기로 했지만, 고증을 중시하시는 분들이라면 내가 쓴 방법(Aires 콕피트 + 키트 데칼)을 쓰실 수는 없겠다.

CRT 디스플레이는 클리어 그린 에나멜로 칠해주었다. 보통 하세가와 F-14 키트에 든 계기판 데칼에는 이 디스플레이 부분을 녹색으로 인쇄해놓았는데, 내가 쓴 F-14B VF-103 Jolly Rogers Christmas Special 키트에는 데칼을 흑백으로만 인쇄해놓았다. 아마도 이 키트가 로우비지 마킹을 재현했기 때문에 데칼을 찍을 때 인쇄도수를 줄이기 위해 넘어간 게 아닌가 싶다. (하이비지 마킹을 재현한 키트의 데칼들은 제대로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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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후방 계기판 부품을 결합한 모습. 설명서에서는 저 계기판 커버 위의 덮개천(캔버스)을 카키색으로 칠하라고 돼있는데, 실제 사진을 보면 자주빛인 경우가 많다. DACO사의 자료집을 보니, 공장에서 나올 때나 현지 부대에서 새로 교환할 때는 검은색 덮개천을 쓰는데, 해가 갈수록 빛, 오염 등에 의해 색이 탈색된다고 한다. 특히, 후방의 왼쪽 덮개천은 파일럿, 정비병 등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손때, 기름때 등을 많이 묻히기 때문에 가장 변색/탈색이 심하다고. DACO사의 자료집에는 이처럼 후방 덮개천 중 왼쪽은 자주색, 오른쪽은 카키색인 사진이 실려있어 꽤 눈길을 끌었는데, 굳이 재현하지는 않았다. 왜? 집에 자주색(보라색) 에나멜 물감이 없어서…ㅡㅡ;;

1/72 스케일에서 이 캔버스의 디테일을 살려준다는 게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닌지라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원체 과문(寡聞)한지라 항상 하던대로, “스케일이 작을수록 (블렌딩을 자제하고)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주는” 방법을 사용했다. 사진 찍어놓은 것을 보니 웬지 ‘해골’이 생각나는데, 실제로는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1. 캔버스 전체를 타미야 에나멜 XF-49 Khaki로 칠한다.
2. 골진 부분을 XF-51 Khaki Drab로 칠한다.
3. 더 골진 부분 또는 그늘이 많이 지는 부분은 XF-1 Flat Black으로 덧칠한다. (XF-51을 칠한 폭보다 더 좁은 폭으로 덧칠하는 것임)
4. 빛을 받는 부분이나 디테일을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XF-57 Buff로 하이라이팅한다.
5. 2~4단계 중, 붓자국이 심하거나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에 제한적으로 블렌딩한다. (붓 끝에 시너를 살짝 묻혀 1~2회 쓸어주는 정도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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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es의 F-14B 콕피트는 초기형을 재현하고 있으므로 사용시 주의해야 한다. 즉, 후방 계기판의 레이다 스코프 디스플레이가 원형이고, 후방 RIO석 왼쪽 콘솔에 있어야할 LANTIRN 조작 레버가 없는 것이다. LANTIRN을 달 예정이므로 LANTIRN 조작 레버를 만들어 달아줄까 했지만, 그랬다가는 또 제작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그만 뒀다.

흑백으로만 인쇄된 키트 데칼을 붙였기 때문에, 실기에서 보이는 빨간색 버튼 몇 개를 에나멜 물감으로 찍어주었다. 초보시절에는 계기판을 무조건 알록달록하게 칠했지만, 요새는 이렇게 몇 개만 찍어주는 게 더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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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 좌우에도 격벽 부품을 붙이고 색칠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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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1/48에서 Aires 콕피트를 쓸 때부터 잘못 알고 있던 것인데, 이번 기회를 빌어 바로잡고자 한다. 바로, Aires 콕피트의 캐노피 잠금장치 문제다. 예전부터 “Aires 콕피트의 기수 격벽부품에는 캐노피 잠금장치가 그대로 몰드돼 있기 때문에, 키트의 해당 부분을 갈아내고 붙여야 한다”고 말해왔었다. 하지만 자료집의 사진을 본 결과,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 사진처럼 캐노피 잠금장치는 바깥쪽, 안쪽 모두 존재했던 거다. 따라서, Aires의 격벽부품은 (하세가와 키트의 격벽을 제거할 필요 없이) 하세가와 키트의 격벽 바로 아래에 위치하도록 붙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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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 뒤늦게 수습에 들어갔다. 이미 키트 격벽부분을 모두 갈아낸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복원해주는 것이다. 얇은 플라스틱 판을 재단하여 붙여주었다. 저 위에 ‘바깥쪽 잠금장치’를 심어주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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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 좌우부품에도 무게추를 넣어주고, 레이돔에도 무게추를 넣어주었다. 고정은 에폭시퍼티로 해준다.

기수부품에는 레이돔과의 자리를 잡아주는 돌기가 나와있지만 이대로 붙이면 레이돔이 약간 단차가 지게 붙는다. 기수부품에 난 돌기를 약간 깎아서 기수와 레이돔간의 단차가 최소화되도록 붙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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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기수를 동체와 가조립해본 모습.

마지막으로, ‘가조립’이라는 말에 대해 푸념 한 마디. 요새 색칠 없이 부품을 떼어내 완성시킨 것을 ‘가조립’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그냥 조립’, 또는 ‘단순 조립’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가조립’이란, ‘접착하기 전, 시험 삼아서 임시적으로 해보는 조립'(test-fitting)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색칠하지 않고 부품만을 떼어 붙여 완성시킨 ‘건담 단순조립 완성품’을, ‘건담 가조립품 판매’라고 판매하는 것은 잘못된 용어다. ‘그냥 조립’이라는 말보다는 ‘가조립’이라는 말이 ‘있어 보여서’ 쓰는 거라면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가(假)-‘라는 접두어 자체가 일본에서 온 것이므로 ‘가조립’이라는 말도 일본식 한자어이긴 하지만, 적어도 개념의 혼동은 없어야 한다고 본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면 ‘가조립’ 뿐 아니라, ‘도색'(塗色)이니, ‘도료'(塗料)니, ‘탈거'(脫去)니, ‘환장'(換裝)이니 하는 일본식 용어들의 범람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색칠, 물감, 제거, 장비교체 등으로 바꿔쓸 수 있는 말들인데, 굳이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써야할까? 원래 문명은 ‘명사'(이름씨)에서 오는 것이라 하는데, ‘명사’를 모두 잃어버리고 우리는 나중에 무슨 말을 쓰면서 살 수 있을까?

… 일본제 키트로 톰캣을 만들다가 주절주절 해봤다.

6 comments

  1. 안녕하세요. ^^

    저도 방금전까지 색칠했는데… ㅋㅋ

    일본식 한자어가 자주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 저도 신경이 쓰여서 글 쓸 때 가급적 제가 알고 있는 부분만은 반드시 우리말이나 왜색이 없는 한자어를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ㅋㅋ

    F-14는 조종석에 서킷브레이커도 있나 보네요… 저걸 어떻게 1/72에서 재현했는지 Aires도 대단하고 꼼꼼히 칠하신 현중님도 대단하시네요. ㅡㅡ;;
    나라 안팎으로 소식이 꽁기꽁기한데 주말에는 그냥 모형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ㅋㅋ

    1.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라는 단어를 자료집에서 읽은 것 같아서 뭔가 하고 찾아봤는데, 후방석 뒷편과 격벽에 있는 오돌도돌한 돌기 같은 게 그거군요. 실기에 대해 공부를 잘 안하다보니 이제서야 이녀석의 정체를 알게 되었네요! ^^

      F-14 조종석 칠할 때 참 괴로운 것 중 하나인데, 간편하게 드라이브러싱으로 처리했습니다. 독일군 군복바지 칠할 때 쓰는 Field Blue로 드라이브러싱하고, 자료집의 사진을 보면서 노란색이 칠해진 몇군데만 노란색 에나멜물감으로 칠해주었죠. 하나하나 다 못 칠해요. ㅡㅡ;;

      오늘은 뭘 만드셨는지 구경하러 가봐야겠습니다. ㅋㅋ

    1. 제가 가장 싫어하는…하지만 피할 수 없는 퍼티 작업(접합선 메우기)과 리스크라이빙(얕은 패널라인 되파주기)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이 시기에는 사진을 잘 안 찍기 때문에 새 포스팅은 없었습니다.

      하세가와 1/72 F-14의 경우, 작업량이 1/48에 맞먹는다는 이야기를 수도없이 들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그 말이 맞더군요. 금형 노후화로 인해 지느러미(플라스틱 까스라기)도 많고, 패널라인도 너무 얕아 이거 수정하는 일이 엄청나네요… 날씨도 더워지는데 큰 산 앞에 선 느낌입니다. ㅡㅡ;;

      이에 비해 후지미 1/72 키트는 비슷한 시기에 나왔음에도 패널라인도 또렷하고 아주 마음에 듭니다. 하세가와제와 함께 two-way로 작업해볼까요? ^^ (만들고 싶은 톰캣 마킹이야 무궁무진하니까요)

  2. 조금만 앉아 있어도 땀이 송송 맺히는데 큰일이네요. 건강 조심하시면서 잘 메꾸고 잘 파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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