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한 극지액션영화였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송강호의 말에서부터 짐작했듯이 이 영화는 극지의 극한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원초적 광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무식한 나조차 눈치를 챌만큼 영화는 이 흐름 속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정말 남극의 하얀 설원처럼 아무 변화 없이 흘러간다. 2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에 비해 이야기가 너무 늘어진 기분.
가끔 관객을 놀래키는 미스테리성의 장면들도 이 영화의 완전한 심리극적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인 것 같다. 미끼를 던졌으면 해소를 시켜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리베라 메'의 초반부에서 최민수에게 구조되었던 유지태는 이 영화의 초반부에서도 송강호에게 구조를 받아 경험 적고 그나마 광기에 덜 물들지 않는 '팀의 막내'라는 캐릭터를 여기서도 이어간다.
날 항상 실망시키지 않는 송강호의 연기는 여기서도 버릴 것이 없지만 자신이 보여주는 광기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시나리오가 너무 상투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데다 그 광기의 표출 역시 몰입도가 떨어지게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어 배우의 공력을 시나리오가 뒷받침해주지 못한 나쁜 사례로만 기억될 것 같다.
오히려 팀 내에서 가장 차갑고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서서히 미쳐가다 파멸해가는 과정을 제일 설득력있게 그려나간 부대장역의 박희순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더 주목하고 싶을 뿐이다. 탐험대원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안경'이라는 소품이 이 영화 속에서 주는 그 이질적이고도 기괴한 분위기는 영화 속 80년전 영국탐험대가 남긴 '남극일기'라는 일기장보다도 더 성공적인 도구였던 것 같다.
그 외에도 '풍경'을 잡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시선 또는 감정'을 잡아내는 데 성공한 카메라와, '공각기동대'의 음악감독이었던 카와이 켄지의 인상 깊은 영화음악 역시 아쉬움 많은 시나리오를 보상받는 댓가로 충분히 즐겨볼만 하다.
* 도달불능점(pole of inaccessibility)이라는 드라마틱한 이름의 영화 속 장치는 사실 남극에만 있는 게 아니란다. 북극에도, 태평양에도, 유라시아대륙에도 있다는데 약간의 드라마틱함이 가미된 지리학적 용어에 불과하지,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은 가십에 불과한 것 같다. 현재 남극의 도달불능점에는 소련탐험대가 세운 건물이 서있단다. (영화에서 나오는 두 채의 오두막과는 다른 건물 같다)
http://encyclopedia.lockergnome.com/s/b/Pole_of_inaccessibility
** 실제촬영은 뉴질랜드와 서울세트장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 인터넷 찌질이들이 올리는 '송강호가 범인'이니 '유지태가 범인'이니 하는 얘기는 영화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무시하고 보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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