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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 선거 전까지 강금실이 왜 인기가 높은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건 마치, 많은 사람들이 서태지를 위대한 아티스트로 칭송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그의 음악이 왜 전향적이었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서태지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이전 현진영, 신해철 등에 의해 시도되었던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강금실 역시 '강효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지만
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별명 역시
'이효리'를 스타로 만들어낸 것이 사실은 스포츠신문들의 자작극이었던 것처럼
말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의 '자기예언'적인 가십에 불과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보라.
신문에서는 이효리를 수퍼스타라고 떠들지만
정작 이효리라는 가수 그 자체에 목매고 사는 열광적인 팬과 팬덤(fandom)은 없다.
신문에서는 강금실을 스타급 정치인이라고 띄우기에 바빴지만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뜨게 되었던 '이유' 자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국무회의에 보라색 투피스를 입고 나왔다든가,
국회에서 의원들의 몸싸움을 보고 '호호... 코미디야 코미디'라고 웃었다는
'에피소드'들만 있을 뿐이다)
.........
같은 논리로써,
지방선거가 아직 막이 오르기 전,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서 그녀가 지지율 1위를 달렸던 것 역시
강금실이라는 개인 자신이 가진 경쟁력이 아니었다.
신문과 언론이 띄운 '스타급 정치신인'이라는 이미지에 포장된
'추상적인 개념'의 '전직 여성 법무부장관'이 있었을 뿐이다.
아니, 백번 양보하여 당시 지지율 1위를 했던 것이
'실체'로서의 그녀 '강금실'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것은 지리멸렬한 여당 내에서 존재감 있는 후보의 부재 때문에 누린
'반사적 권리'와 같은 것이었지,
그녀 주체적으로 '시대와 시장의 요구'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니었다.
지지율 1위 후보로서의 이러한 수동적이고 빈약한 토대는
주체적인 후보가 나타날 때 겉잡을 수 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그런데도 여당은 그녀를 결국 서울시장 후보로 강력하게 밀기 시작했다.
(물론, 여당이 그녀를 선택한 이유가
'야당후보로 누가 나오든지간에 그녀가 확고부동한 1위일 거라고 착각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빈약한 토대를 알고 있으면서도 대안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였던 건지는 알 길이 없다)
오세훈이 야당의 후보로 선택된 것을 보자.
많은 사람들이 당내경선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 잘났죠?' 라고 하려는 거, 아니다)
여당을 꺾어야 한다, 잃어버린 정권(이미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선거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을 되찾아와야 한다...라는 집념으로 가득찼던
한나라당 당원들은
그 자신이 맹형규를 지지하건, 홍준표를 지지하건 상관없이
여론조사 1위에 표를 몰아줄 각오가 단단히 돼있었다.
그리고 (내가 뒤에 '알 수 없다'라고 표현할) '깨끗하다', '참신하다'라는
그 자신의 '주체적인' 이미지를 갖추었던 오세훈이 대항마로 나서자
그때까지 '반사적 권리'로서 지지율 1위를 누리고 있던 강금실의 지지도는
빠르게 와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체적인 것'의 힘은 언제나 '수동적인 것, 반사적인 것'을 압도한다)
2. 그러나 선거기간 중, 그녀는 그녀 스스로의 퍼스낼리티를 구축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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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강금실의 출마는 사실 잘 짜여진 전략의 하나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선거기간 중, 그녀 스스로 '성장했다'라는 것이다.
사람과 부대끼는 법을 배우고 생각의 외연을 '사람'으로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면
그녀가 사실 굉장히 깊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그냥 이렇게 단순하게 써놓으면
'사법시험 통과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기본 아니냐'라며 가벼이 넘길 사람도 많겠지만,
선거가 끝난 이제 와 고백하건대,
우울한 시대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며,
그 시대와는 달리 탄탄대로를 걸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득했던,
그리고 이 모든 얘기들을 '인문학자'와 같은 언어로 술회했던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 것은
굉장히 정밀(靜謐)하고 신실한 경험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법 해석 기술자' 이상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위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선거운동을 거치면서
이제까지 안으로만 삭혀왔던 '시대와 사람에 대한 고민'들을
변증법적으로 지향(해소)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거다.
근거를 대라면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 눈에는 그녀가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3. 하지만 오세훈은 시종일관 정말 중요한 순간에 침묵을 지켰던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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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세훈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강금실의 인터뷰 기사에서 느꼈던 신실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고민, 시대에 대한 고민...
과연 그는 이런 것을 붙들고 울어본 적이 있을까, 부끄러워본 적이 있을까 싶을만큼
우울했던 시대를 그가 어떻게 통과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전무했다.
그의 선거 현수막에 적힌 '시민의 힘'이라는 구절을 보고 순간적으로 아득함을 느꼈던 것이
내가 유별나게 민감해서였던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그가 환경법에 조예가 깊고, 환경운동도 열심히 한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과연 그것으로 인해 '시민'이라는 단어가 '한나라당'에 겹쳐질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것 같다.
......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옳다.
누가 들어도 별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모범답안' 같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일각에서 1980년대 보안사 정훈장교 였다는 사실을 두고 말이 있었지만
'그게 그렇게 크게 문제 돼?' 하면서 별로 마음 두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발견할 수 있었던 것...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것,
그리고 이회창을 정치적 스승으로 존경한다는 것...
여기서 나는 더이상 오세훈이라는 사람을 '깨끗하다'라고 믿지 않았다.
말쑥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아... 저 사람, 머리를 굴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대번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쉬 보지 못하는 그의 내면 깊은 곳의 어두운 속마음을 훔쳐본 듯,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글쎄...
내 자신이 너무 교활하기 때문일까.
교활한 사람은 교활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우리 회사에 찾아오는 채무자들도
사무실에서 난리 피우는 사람들은 차라리 순진하고 순박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은,
면전에서 웃음을 띠고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머리를 써'서 우리 뒤에서 무언가를 꾸미기 때문이다.
오세훈에게서도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보통은 모범답안으로 질문의 예봉을 피해가지만,
민감한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 곳곳에서
그의 말쑥한 이미지와는 괴리되는,
언뜻언뜻 '머리를 쓴다'라는 느낌이 느껴져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는 과연 '우울했던 시대'를
어떤 생각으로, 어떤 철학으로 통과했던 것일까...
아직도 알 수 없다.
4. 그래서 최종적인 승자가 오세훈이라는 것은 굉장히 절망적인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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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똑같이 법률가의 길을 걸었다.
똑같이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서 인정 받고
똑같이 나름대로의 지지도도 확보했다.
하지만, '시대와 사람에 대한 고민'이라는 측면에서
두 사람의 차이는 현격해보인다.
같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하더라도
한 사람은 그 쓰디쓴 시대 속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자신을 부끄러워했고
한 사람은 그때의 기억 자체를 회고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두 사람의 행동 자체가
둘 다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일 가능성, 물론 있다.
하지만 '전략적 행동'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자신의 아들 이사악을 번제의 제물로 올리며 눈물을 삼키는 아브라함의 모습처럼
시대와 자기 개인의 비동조성(非同調性)에 슬퍼했던 사람과,
시대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한채 '나' 자신에 천착했던 사람.
(설마 '나 하나만이라도 잘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으리라고는 믿지 않겠다)
거대한 도시의 시장으로 누가 더 맞는 사람이었을까.
중요한 순간에 침묵을 지키면
자신의 안위는 온존(溫存)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거듭될 수록
자신의 몸에는 때 하나 묻지 않게 된다.
그러한 '깨끗함'을 '깨끗함' 그 자체로 인정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이다.
하지만, 나는
워싱턴DC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보았던 다음의 구절을
여전히 기억하며 살고 싶다.
The hottest place in hell is reserved for those who, in times of moral crisis, refused to take a stand.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이 위기에 처했을 때 중립에 선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단테의 '신곡'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