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usly Light Mod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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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고생, 2MB, 촛불

 
 
 
 
괜히 불리한 일을 겪을까봐 일부러 블로그에서 정치적인 얘기는 쓰지 않으려 했다.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정치적 의견을 적었다가 개떼같은 기자들로부터 스토킹당하고 신문 사설에서까지 '미친 소리'를 듣고 중고생들의 시위에 배후세력으로 낙인 찍히는 기상천외한 경험을 겪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괜히 책잡힐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로 있고 싶었던 거다, 요즘 같은 수상한 시절에.

내가 취직한지 4년이 좀 넘었다.

그간 승진도 했고, 가정도 꾸렸고, 성격도 좋아지고(??), 취미생활도 누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것들의 원인으로는 내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외풍에 크게 시달리지 않는 소위 '공기업'에 다닌다는 덕을 많이 봤던 것 같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이라는 흐름은 나 역시도 비껴나가질 않는 것이어서 요 며칠새에는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으로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고비가 아예 없겠어요?"

라던 팀장님의 말씀처럼, 좀 넓고 여유롭게 보고자 하는데, 원체 회사에 대한 기대가 컸던데다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이 내가 속한 회사의 외피에서 왔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지라 지금의 불안함과 흔들림이 다시금 나의 나쁜 습성들(주위를 돌보지 않고 내 생각만 한다거나, 대책없이 걱정만 한다거나 하는...)을 내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 불러내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되는 것은, 가까이는 내 옆에 함께 하는 집사람의 존재이고 크게는 광화문을 비춘 수많은 촛불들의 존재이다.

"여보,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먹여살릴께, 나한테 앵겨!" 라는, 구김살 없고 당찬 집사람의 응원에서 "그래, 이것보다 더한 걸 겪은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못할게 뭐 있냐" 싶은 강단이 생겨나고 이래서 부부란 것이 서로를 믿고 기대는 '동반자'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편, 촛불을 들고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면서도 그 자리를 한바탕 축제의 마당으로 승화시키는, 지극히 세련된 정치적 감각을 지닌 10대들을 보면서 온갖 절망적인 것들이 터져나온 상자 밑바닥에서 '희망'을 발견했다는 판도라처럼 나 역시 주저앉아서는 안되겠다며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리게 된다. 우석훈의 말처럼 10대 소녀들에게는 다른 세대와는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10대 소년과 20대 청년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게 당연하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가부장적인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의 권력구조에 편입하려 하거나 사회구조에 편입되지 못한다는 좌절감과 절망감으로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둘 중 하나의 길만을 강요받는 10대 소년들.

그조차도 없이 오로지 '살아야 한다'라는 강박 속에서 자신을 도서관과 기업 속으로 밀어넣으려는 20대들.

10대 소녀들이 '정치적으로 발랄하다'는 건, 그들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여서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20대가 아니라 10대이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우리사회가 여전히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문화이며, 생존 그 자체의 문제가 사람들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그들이 든 촛불의 의미를 폄하하고 비관적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얼마전에 최근 수능 기출문제를 살펴보니 법, 사회, 논리, 추론 등에 대한 문제들이 참 많이 보이더라. 대학입시 때문이건 뭐건간에 이러한 '시민으로서의 무기'들이 교육과정 속에서 체득된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고, 이것만으로도 조중동과 이명박은 미래의 시장, 미래의 세력들과 척을 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미래가 밝고 희망적이라면, 나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다.
2008/05/10 18:26 2008/05/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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