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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신문 영화광고를 보면 어린 눈에도 좀 B급이다 싶은 영화들에는 꼭 '화양'과 '대지'가 같이 붙어있었다. 그게 극장이름이란 걸 알게 된 건 조금 뒤였고, 관계회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지나서였다. (두 극장 외에 가끔 '명화'도 따라다닐 때가 있었다)
거의 10년 전쯤이었나, 신사역 부근에 클래식전용극장을 표방하며 '시네마 오즈'가 개관했던 게. 멋진 취지라는 게 꼭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런지 좋은 개관취지를 지키지 못하고 일반 개봉관이 되었다가 이제는 아예 문을 닫아버렸지만, 그래도 내가 영웅본색 1, 2편과 첩혈쌍웅을 영화관에서 본 것은 시네마 오즈의 개관이벤트가 처음이었다. 관련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던 오덕(?) 대학생이었던 나와, 내 웹사이트를 통해 만난 몇몇 사람들, 그렇게.
지금은 웹하드만 뒤져도 영웅본색, 첩혈쌍웅 같은 것은 금세 찾을 수 있기에 과연 영화관에서의 재상영 이벤트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회의가 들긴 한다. '기술복제시대에서 파괴되는 예술 속 아우라의 비극'을 갈파했던 벤야민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1986년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남자 중고등학생들이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이라는 걸작을 영화화된 카운터스트라이크(게임)처럼 미끈한 건샷무비로만 소비하는 게 아닐까 지레 못마땅해할 수도 있다. (촛불집회의 10대에 대한 386들의 칭송이란 사실 20대에 대한 환멸과 거울상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삐딱한 시선을 '세월'로 돌려보자면, 절대불멸일 것 같았던 이 영화들이 결국 이렇게 '클래식'이라는 미명 하에 추억마케팅, 실버마케팅의 소재로 '전락'했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나'도 늙었구나...하는 다소간의 비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어떤 소회도 동일한 전제 위에 서 있다는 거다. '영웅본색, 첩혈쌍웅이란, 의리, 우정, 낭만과 같은 모든 수컷적 가치들을 현현한 궁극의 마스터피스'라는 지독할 정도의 로열티. 유감스럽게도, 관련 웹사이트 운영자였던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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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티브 카렐이 주연한 코미디영화를 조조할인 끊어 보러갔더니 오우삼의 '적벽대전' 예고편이 나오더라. 오우삼이야 예전부터 중화의 고전을 대서사시로 그려보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으니 결국 이 영화가 나오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너무나 값싼 인건비와 풍부한 자원을 마음껏 써먹는 바람에 그만큼 희소성이 떨어진, 고만고만한 중국식 블록버스터 중 하나가 돼버리는 게 아닐까 안쓰러운 마음 여전하다. 오우삼이 사실 대하역사물이라든가 대규모 전투씬이라든가 하는 큰 스케일을 절묘하고 치밀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물론 나는 여태동안 중국식 블록버스터를 한번도 안봤지만, 평이 어떻건 '적벽대전'을 보러 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옛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 '당신, 그동안 어떻게 지냈소... 당신의 작품을 보기 위해 다시 스크린 앞에 앉았다오...' 하는 마음에 가까울 것이다.
그 친구와 내가 가장 친하고 의기투합했던 호시절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무사들이 총을 들고 聖과 俗을 넘나드는 그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영화들의 시기였지만, 나는 한때 그와의 좋은 친구였던 까닭에 내 입맛에 맞는 작품을 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가 변했다느니 배신이라느니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가는 길이 어떻든 그가 가는 길, 성장하는 방식을 인정해주는 것이 진정한 팬의 길, 친구의 길이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