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usly Light Modeler

검색 :
RSS 구독 : 글 / 댓글 / 트랙백 / 글+트랙백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

 
 
 
 
6시에 미사가 시작된대서 마음이 급했다.
30분은 족히 늦겠구나 하고서 부랴부랴 나간 시청광장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다행히 미사도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이름...

딱 20년전에 들었을 때는 왜 사제들이 정치에 관여하는가, 세상이 더럽고 힘들더라도 종교만큼은 성전 안에서 위로와 안식의 말을 해주어야지 왜 속세에 개입하려 하는가 하는 반감만 들었다. (물론 그때는 청와대의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자리에 올랐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으니까) 그런 반감은 어느 말쑥한 신부가 여자 대학생과 함께 판문점을 넘는 장면이 TV에서 나왔을 때 '빨갱이'라는 단어를 그들 위에 쉽게 덧씌우는 데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때, 신문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천주교의 정식인가단체가 아니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사에서 인터뷰했던 천주교 관계자는 사제단이 천주교의 공식조직이 아니라며 사제단을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하고 싶어했던 건 아닐 것 같다. 그저 'fact'만 말했겠거니 싶다. 하지만 그 신문은 그러한 fact에 대한 언급에 불과한 인터뷰를 이용하여 그들이 그때까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그러하였듯 사제들을 빨갱이, 좌익분자로 몰아가려 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금요일, 할머니 제사 때문에 사당동 집에 갔다가 아버지한테 '데모하는 데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부모님과의 정치적 견해차에서 오는 불화는 이미 이력이 오래된 것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고 요 근래 집회에 더 자주 나갔지만 오늘 나간 시국미사에서는 느껴지는 바가 많이 달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직도 우리 부모가 '빨갱이'들로 믿고 있을 저 신부들이 집전하는 미사에, 중년... 초로... 내 부모 또래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보였다. 과연 제대 위의 '빨갱이' 신부들을 믿고 이 자리에 나온 그들의 신념은 내 부모의 신념과 어떻게 다른 것이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사는 시종일관 신앙과, 유머와, 의지로 진행되었다. (봉헌성가를 '헌법 제1조'로 고른 센스에는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하지만 사제단은 결코 투쟁이나 대결을 주문하지 않았다.
50일 넘게 촛불시위를 하면서도 절대 응답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분노했던 마음, 그래서 이렇게 해서 달라지는 게 무어냐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물리력을 사용했던 우리들의 조급함... 그러면서 서서히 벌어져만 갔던 시민들 사이의 연대, 그리고 반목과 분열의 생채기들...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우리가 고립되어 이대로 스러지는 것이 아니냐고 무의식 중에 느꼈던 외로움과 불안함... 그러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사제단은 '위로하고 보듬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이야기했다.

쇠고기니, SRM이니, 재협상이니 하는 것들, 그런 것보다도 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은 그러한 '영혼과 신념의 증원군'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고, 우리가 옳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우리의 축 처진 어깨를 툭툭 두드려줄... 그러면서도 '우리가 50일 동안 촛불 드는 동안 누구는 산 위에서 촛불구경만 했대요~' 라며 유머있게 위정자를 조롱할 줄 아는 여유... 우리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그런 것들의 보급이 아니었을까.

... 참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위로였다.

더이상 광화문 사거리를 뚫지 못해도, 청와대와 반대방향으로 거리를 행진해도 난 정말 힘이 펄펄 났다. 앞으로 50일은 더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우리가 든 촛불은 빛이고,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2008/06/30 23:56 2008/06/30 23:56

맨 위로